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인물에 대해 느껴지는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지지만 마음의 자국은 남는다.
이런 감정에 대해 나는 덮어두고 살았다. 시간이 흐르면 잊혀 지겠지.. 그렇지 않더라
비슷한 모양이 보이기만 해도 나에게 익숙한 감정인 화로 표현되었다.
그러다가 상담사가 되어 여러 상황에 노출되어 아파하는 내담자를 엿보게 된다. 신기한 경험이었고 여러 기법을 넘어 그들에게 내가 받고 싶은 격려와 따뜻한 말들을 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이 되니 그 언어들과 작은 격려를 나도 받아먹고 있었고 그들과 함께 조금씩 치유 되어 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어느 날 인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과거의 모습을 봐야만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의 근육이 생기니 쑤욱 하고 과거의 나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참 아팠다. 그러지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을 잘 마무리 하고 나서 나는 깊은 우울감에 빠졌었다. 그 찰나의 나와 마주하면서 그 모습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나에게 조용히 눈으로 말해주었다.
괜찮다고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아픈데 어쩌겠냐고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니었지만 일어나 버렸는데.. 그 깨달음이 오는 순간 너무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있다. 뭐가 그리 슬픈지도 모른 채 말이다.
나는 여러 번 이런 경험을 했다. 그때 마다 방법은 한결 같다.
우선 그 상황을 겪고 있는 나와 마주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건다. 무엇이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묻는다. 해결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바로 해결이 될 리 없다. 상흔은 원래 그렇다.)그냥 머물러 주는 것 다시 말해 너도 아플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좋겠다.
지금 나는? 너무 자유롭다. 참 진리를 알아서 자유롭고,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놔서 자유롭고, 타인에게 실수를 해도 그게 내모습인 것을 알아서 쉽다. 말을 할 때 여전히 언어를 조심하며 살지만 해결하고 있는 과정인 나는 여전히 화를 가지고 산다.
미안하다고 사과도 한다. 내가 이해되지 못한 상황이어도 이제는 먼저 미안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