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Erikson)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심리학적인 존재로서 성인 초기라 말하는 18세~24세에 결혼이나 직업을 통해 친근감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이때에 사회적 관계를 피하거나 자기 자신에게만 열중할 때 고립감(isolation)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대인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인의 시기에 입문한 각 개인은 한 가지 이상의 가깝고 따뜻한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도전을 만나게 되고, 그것을 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삶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두 달 전쯤 가수 윤종신씨의 음악프로젝트 <월간 윤종신> 4월호‘고립’이라는 곡이 대중에게 소개되었다. 윤종신씨는 미국 내‘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때 쯤 미국 횡단을 가까스로 마쳤고, 실제로 지금 머물고 있는 낯선 곳에서 거의 3주째 집안에 갇힌 것처럼 살면서 완전히 달라져 버린 본인의 일상을 가사로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는 어제와 오늘이 구분되기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정서적인 고립감이 커서 몽롱함과 우울감을 경험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성인이 이뤄내야 할 삶의 과업 중 하나가 타인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친밀감(intimacy)을 형성하는 일이지만 실제로 이 과업을 이뤄 냄으로 관계에서 오는 따뜻함을 경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형식적인 관계라던가 피상적인 사이로 지내게 되면 가장 큰 이점은 상처를 받을 일이 급격히 줄어드는 일일 것이다. 혹을 띠려다 혹을 하나 더 붙이는 격으로 차라리 고립감을 선택함으로 오는 마음의 평안이 얼마나 유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윤종신씨 처럼 환경적 고립을 실제로 경험하면 고립감이 어떤 느낌으로 사는 것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고립되어 살고 싶지 않는 나를.. 애써 외면할 뿐이다. 누군가 나를 찾아 주었으면 좋겠고, 내가 어느 집단에서든 필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누구나 한결 같다. 그런데 욕먹고 싶지도 않아서 그런 내 친밀하고자 하는 욕구를 성향에 맞게 잘 숨기고 살 뿐이다.
어차피 친밀함에 애씀이 없을 때 고립감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면,“에라~ 모르겠다!”진솔하게 원하는 상대에게 다가가 보자! 부모 또는 자녀, 배우자에게, 그리고 관심이 가는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움직임이 친밀감을 경험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내가 너의 이런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라는 식의 진솔한 한마디로 마음의 빗장을 덜컥 열수 있다. 친밀감은 삶의 필수 요소이며, 시도 해 볼 만한 모험이다. 고립감을 경험하기 싫다면 말이다!